외교사절의 특권과 면제(1)
1. 외교사절의 법적 성격
일반 외국인과 달리 외교관에 대하여는 접수국에서 일정한 특권과 면제가 인정됩니다. 당초 이는 외교관의 신체의 불가침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미 16세기 말 유럽에서는 신체의 불가침이 관습 국제법으로 확고히 확립되었습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외교관의 신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를 파견한 왕에 대한 범죄로 인식되었습니다. 상주 외교사절 제도의 정착과 함께 신체의 불가침은 “공관"이라는 장소의 불가침으로 확대되었고, 대사의 수행원에 대하여도 불가침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외교관에게 특권과 면제가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외교관의 개인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외교공관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인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권과 면제는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그를 파견한 국가의 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권과 면제는 외교관이 개인적으로 포기할 수 없고, 본국만이 이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2. 공관 지역의 불가침
공관 지역(the premises of the mission)은 불가침입니다. 공관 지역이라 함은 공관장의 주거를 포함하여 공관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물과 부속토지를 말하며, 그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현지 관헌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는 공관 지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공관 지역과 그 안의 비품, 기타 재산, 공관의 수송수단은 수색, 징발,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됩니다.
공관 명의의 은행계좌도 불가침의 대상일까요? 성격상 공관 지역 외에 소재할 수밖에 없는 은행계좌에 대하여 비엔나 협약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관습 국제법상 공관의 은행계좌도 불가침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로부터도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공관 지역이 법적으로 파견국의 해외 영토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공관 지역에도 현지법은 적용됩니다. 한편 공관 지역은 국제법상 공관의 직무와 양립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화재나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사태가 발생한 경우 공관장은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접수국 관헌의 공관 진입을 허용해야 할까요? 긴급사태에도 불구하고 공관장과의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긴급성과 불가피성이 인정되는 경우 불가항력 또는 묵시적 동의를 이유로 공관장의 허가 없이도 진입할 수 있는 관습 국제법이 성립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엔나 협약 성안 시 이 같은 내용의 예외 조항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수락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그러한 예외가 시행되었던 사례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 같은 관습 국제법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비엔나 협약은 공관의 절대적 불가침을 규정하였다고 해석됩니다.
과거에는 본국의 가혹한 처벌을 피하여 외국 공관으로 도피하여 비호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교 공관은 이러한 도피자를 보호할 권리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1954년 외교적 비호에 관한 미주 협약은 외교적 비호권을 인정하고 공관의 파견국에게 범인의 정치적 성격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관습 국제법상 공관의 외교적 비호권이 인정된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다음은 이 점에 관한 ICJ의 판단입니다.
다만 현지의 정치적 소요 시 반체제 인사가 외국공관으로 도피하면 공관이 적어도 일시적으로 그를 보호하는 인도적 실행은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공관이 권리로써 그를 보호하거나 안도권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단지 공관의 불가침의 결과 공관장의 허락 없이는 접수국 관헌이 공관 내의 도피자를 강제적으로 체포할 수 없을 뿐입니다. 중국 주재 한국 공관에 탈북자가 진입한 경우도 같은 기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동독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 내 서독 공관으로 진입하여 서독행을 요구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서독 공관으로의 진입을 통제하기는 하였으나, 이미 공관에 진입한 자들의 축출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결국 이들의 서독으로의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자국민의 탈출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던 동독은 마침내 베를린 장벽의 개방을 선언하였고, 1990년 동서독은 통일되었습니다.
접수국은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공관부지를 강제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요? 주권국가는 공적 목적을 위하여 일반 외국인의 재산을 수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엔나 협약의 성안 시에도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보상을 전제로 접수국이 외국 공관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자는 제안이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협약 제22조는 예외 없는 공관의 불가침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파견국의 동의 없이는 접수국이 공관부지를 강제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해석됩니다.
3. 공관의 서류와 문서, 통신의 불가침
공관의 문서와 서류(archives and documents)는 언제 어디서나 불가침입니다. 양국 간 외교관계가 단절되거나 무력충돌이 발생한 경우에도 공관의 재산과 문서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문서와 서류는 반드시 종이로 만들어진 것만을 의미하지 아니하며, 컴퓨터 저장장치, 필름, 사진, 녹음도 불가침의 대상이 됩니다. 최종적인 공식 문서만 아니라, 초안과 같은 비공식 문서도 포함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접수국 수중에 들어간 외교공관의 문서는 즉시 반환되어야 하며, 접수국에서 사법절차나 다른 목적을 위하여 활용될 수 없습니다.
공관의 공용 통신도 불가침입니다. 공관과 본국 간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신의 확보는 외교업무 수행을 위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공용 통신문이란 공관과 직무에 관련되는 모든 통신문을 망라합니다. 다만 공관이 무선 송신기를 설치하려면 접수국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외교공관은 보안을 위하여 본국과의 연락에 외교행랑을 사용합니다. 외교행랑은 접수국 관헌에 의하여 개봉되거나 유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교행랑을 운반하는 외교신서사도 신체의 불가침권을 향유하며, 체포나 구금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교행랑이 남용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동의가 없이는 접수국이 이를 개봉하거나 유치할 수 없습니다. 영사 행랑의 경우와는 달리 비엔나 협약에는 접수국이 이를 본국이나 공관으로 반송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습니다.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접수국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비행기에 대하여 적재를 금지시키는 방법으로 운송을 막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4. 외교사절 신체의 불가침
외교관의 신체는 불가침입니다. 외교관은 어떠한 형태의 체포 또는 구금도 당하지 아니하며, 접수국은 외교관의 신체 · 자유 · 품위가 침해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이는 외교관계의 국제법 중 가장 오래된 법원칙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16세기 말 이전에 관습 국제법화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외교관이 간첩 혐의에 관련되었던 사례가 많았으나, 이들은 추방되는 선에서 그치고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이나 외교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교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로서의 물리력을 사용하거나 일시적 억류조치 등은 가능합니다. 만취상태에서 운전하는 외교관을 적발하면 당장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일시 신체를 억류를 하거나 차량을 압류할 수 있습니다.
5. 사저 개인 서류와 개인 재산의 불가침
외교관의 개인 주거는 공관과 동일한 불가침과 보호를 향유합니다. 이때 주거란 호텔과 같은 일시 체류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이 휴가나 출장으로 개인 주거지를 일시적으로 떠난 경우에도 계속 불가침권을 향유합니다.
외교관의 서류, 통신문, 개인재산도 동일한 불가침권을 향유합니다. 외교관의 개인적 서류와 통신문의 불가침에 관하여는 예외가 없기 때문에 외교관이 상업적 활동으로 인하여 접수국의 재판관할권에 복종하여야 하는 경우에도 재판에 필수적인 관련 개인 서류의 제출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비엔나 협약의 채택 과정에서 이에 대한 제한을 설정하자는 개정안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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