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가 행위자의 국제테러와 무력행사
1. 비국가 행위자의 테러행위에 대한 쟁점
9.11 사건은 사적 테러단체도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의 무력공격 이상의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알 카에다의 비호국인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공격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점령 중입니다.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무력행사에 대한 대응체계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인의 무력행사는 국내법에 의하여 처리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9.11 사건은 비국가 행위자의 테러행위에 대한 무력대응에 있어서 국제법적으로 매우 어렵고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였습니다. 중요한 몇 가지 쟁점을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피해국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둘째, 테러단체의 수용에 대하여도 피해국이 무력대응을 할 수 있는가? 셋째, 비국가 행위자인 테러단체와 국가 간의 무력충돌 시에도 국제인도법이 적용되는가? 넷째, 궁극적으로 비국가 행위자의 국제법상 지위는 무엇인가?
2. 무력공격 피해국의 자위권 행사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공격에 대한 쟁점 첫 번째는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피해국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입니다. UN 헌장 체제하에서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는 근거는 자위권이 거의 유일합니다. 헌장 제51조에 의하여 자위권은 무력공격(armed attack)이 발생하였을 경우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테러단체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도 헌장 제51조가 말하는 무력공격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을까요?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사적 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헌장이 무력공격의 주체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국가를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9.11 사건에서는 테러단체가 미국을 상대로 국가 간의 무력충돌에 못지않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가하였습니다. 알 카에다의 파괴력은 전통적 국제법이 예상하지 못하였던 수준이었습니다. 사건 이후의 안보리 결의 제1368호와 제1373호는 테러행위를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선언하고, 이어서 자위권의 행사 가능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도 비국가 행위자의 테러행위에 대한 자위권의 행사 가능성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ICJ는 아직 비국가 행위자에 대한 자위권의 발동을 정면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장벽 건설에 관한 권고적 의견의 심리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보안장벽의 건설이 현장 제51조에 규정된 자위권과 일치하는 조치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안보리 결의 제1368호와 제1373호를 지적하였으나, ICJ는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위협이 영토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유로 헌장 제51조는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콩고 영토에서의 무력 활동에 관한 사건에서도 유사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ICJ는 콩고령에 주둔하는 비정규군 조직이 우간다를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 우간다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상의 사건에서 ICJ가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었으나, 대체로 비국가 행위자를 국제법상 무력공격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석되었습니다. 일부 판사들은 비국가 행위자도 헌장 제51조가 규정하고 있는 무력 공력을 할 수 있다며, ICJ의 이러한 입장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3. 테러단체 수용국에 대한 자위권 행사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공격에 대한 쟁점 두 번째, 9.11 사건을 일으킨 알 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본거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알 카에다의 공격을 받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행위는 국제법상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요? 테러 피해국은 테러단체의 수용국에 대하여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까요? 이때 테러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수용과 자국 내 테러단체를 통제할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묵인하고 있는 수용국에 대한 대응방법은 구별되어야 할까요?
전통적인 국제법 이론에 의하면 비국가 행위자의 테러행위의 책임이 수용국에게 귀속될 수 경우, 수용국은 피해국에 대하여 국가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설사 국가책임이 성립된다고 하여도 무력공격의 주체가 아닌 국가를 상대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1985년 자국민에 대한 테러행위의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이 튀니지에 소재한 PLO 본부를 공습하면서 자위권의 행사를 주장하였으나,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UN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무력 침략행위(acts of amed aggression)라고 비난했습니다.
반면 미국이 알 카에다를 비호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국제 테러단체의 수용국이 공공연히 비호를 부여하는 경우 해당 국가를 제재하지 않는 한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수용국에 대하여는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 외에도 수용국은 중립국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무력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 개입권에 의하여 수용국에 대한 무력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 긴급피난의 한도 내에서 수용국에 대하여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주장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4. 국제인도법의 적용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공격에 대한 쟁점 세 번째, 비국가 행위자를 상대로 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도 국제인도법이 적용될까요? 일각에서는 일정한 수준의 조직과 지휘체계를 갖추고 그 자신도 국제인도법을 준수할 능력이 있어야만 국제법상의 무력충돌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나, 테러단체는 이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테러단체의 테러행위는 무력충돌이 아니라 범죄행위에 불과하며, 국제인도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알 카에다와 같이 대규모의 조직화된 테러단체가 활동하는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따라서 다른 일각에서는 테러단체를 상대로 한 무력행사는 일종의 비 국제적 무력충돌로서 이에 관한 국제인도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 국제적 무력충돌에 관한 국제인도법은 주로 한 국가 내에서 정부와 반란군 간의 전투 상황에 적용되기 위한 내용인데, 테러와의 전쟁에도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5. 비국가 행위자의 국제법상 지위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생포하여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된 알 카에다 대원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는 제네바 협약상의 포로에 대한 대우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Hamdan 사건에서 제네바 협약의 공통 제3조가 그에게도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9.11과 이후의 사태 전개는 국제법에 대하여 수많은 숙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거대한 파괴력을 가진 국제 테러단체의 등장은 국가를 기본 행위자로 인식하고 있던 국제법으로서는 당혹스러운 변화였습니다. 국제 테러단체의 행위를 단순히 사적 행위로만 취급하는 것은 당장의 현실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을 국제법의 체계 속에 전면적으로 포섭하기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비국가 행위자가 국제질서의 실질적 참여자로 등장하는 것은 비단 국제 테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제법이 비국가 행위자의 법적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는 향후 국제법이 직면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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