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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인도 제도의 의의와 내용

DJ잉치키 2022. 7. 6.

1. 범죄인 인도 제도의 의의

범죄인 인도(extradition)란 해외에서 죄를 범한 피의자, 피고인 또는 유죄판결을 받은 자가 자국 영역으로 도피하여 온 경우, 그의 재판이나 수감을 원하는 외국의 청구에 응하여 해당자를 외국으로 인도하는 제도입니다. 근대에 들어 국제교통수단의 발달로 범죄인이 해외로 도피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각국은 영토 관할권의 한계를 넘어 범죄를 진압하는 방법의 하나로 범죄인 인도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근대 초엽까지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범죄인의 인도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정치범에 관하여는 불인도 원칙이 발달하고 일반 범죄인의 인도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응할 국제법상의 의무는 없습니다. 오직 사전에 체결된 범죄인 인도 조약에 의하여만 인도 의무가 발생합니다. 한편 조약이 없더라도 국가 간 범죄인 인도가 금지된 것은 아니며, 국가가 예양으로 인도를 실시하는 것은 재량입니다. 조약상의 금지가 없는 한 외국의 청구에 기하여 국가가 자발적으로 범죄인을 인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법 원칙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범죄인 인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나,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범죄인 인도가 제도화된 것은 국제 교통이 발달한 근대 이후입니다. 특히 19세기부터 벨기에를 필두로 각국은 범죄인 인도에 관한 국내법을 제정하는 한편, 수많은 양자조약을 그물망 같이 체결하여 범죄인 인도 체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 역시 1988년 범죄인 인도법」을 제정(2010년 개정)하고, 2011년 10월 현재 호주,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등 27개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발효시켜 운영하고 있습니다. 범죄인 인도가 원만히 진행되려면 상대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상호 신뢰가 필요하므로 범죄인 인도 조약은 주로 양자조약의 형태로 발달되었고 범세계적 조약은 성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조약 내용의 대부분이 기술적 성격이므로 범죄인 인도 조약들은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UN은 총회 결의의 형식으로 모범 조약안(Model Treaty on Extradition)을 제시하고 있다(결의 제45/116호(1990.12.14)), 역내 협력이 상대적으로 잘 진행되는 유럽이나 미주 국가 간에는 범죄인 인도에 관한 지역별 다자 조약도 체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조약이 없더라도 향후 유사한 사례 발생 시 상대국의 상호주의적 대응을 전제로 범죄인 인도가 이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법」 역시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에도 범죄인의 인도를 청구하는 국가가 같은 종류 또는 유사한 인도 범죄에 대한 대한민국의 범죄인 인도 청구에 응한다는 보증을 하는 경우"에는 인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4조).

 

2. 범죄인 인도 제도의 기본 내용

범죄인 인도는 양자조약을 통하여 발전하여 왔지만, 국제적으로 범죄인 인도 제도의 운영내용은 상당 부분이 표준화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공통성이 큽니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법」이나 외국과 체결한 범죄인 인도 조약의 내용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범죄인 인도에 관한 각국의 국내법과 조약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하여야 할 사항은 범죄인 인도는 관습 국제법상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의 내용과 다른 실행이 이루진 다고 하여도 반드시 국제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1) 인도대상 범죄의 규정 방법

초기의 범죄인 인도 조약은 인도의 대상이 되는 범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근래에는 처벌 가능한 최소 형기를 기준으로 인도 범죄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대상 범죄의 죄목을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면 무슨 범죄가 인도대상이 되는지 명확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중요 범죄에 대처하기 어렵고 국가 간 범죄 개념의 불일치로 인하여 혼선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대체로 인도대상 범죄가 징역 1년 또는 2년 이상인 경우를 인도대상으로 규정하는 예가 많습니다.

 

2) 쌍방 범죄성의 원칙

범죄인 인도의 대상이 되는 자의 행위를 범죄로 판단하는 기준은 어느 나라의 법률인지, 인도를 청구하는 국가의 법인지, 인도를 청구받는 국가의 법인지, 대부분의 범죄인 인도 조약은 대상 행위가 인도 청구국과 피청구국 모두에서 범죄로 성립될 수 있는 행위를 인도대상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3) 특정성의 원칙

범죄인이 청구국으로 인도된 이후 그는 인도 청구의 사유가 되었던 범죄에 한하여 처벌을 받으며, 인도 국의 추가 동의가 없는 한 인도 사유에 명시되지 않았던 범죄에 대하여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범죄인 인도 제도에 적용되는 일종의 죄형법정주의입니다. 다만 인도 후 새로이 범한 범죄, 범인 자신이 동의하는 경우, 인도 국이 동의하는 경우, 본인이 출국할 기회가 부여되었음에도 계속 체류한 경우 등은 새로운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합니다.

 

4) 일사부재리의 원칙

인도가 청구된 범죄에 대하여 피청구국에서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또는 제3 국에서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 등은 중복적 처벌을 회피하기 위하여 범죄인 인도가 거부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하여도 인도가 거절됩니다.

 

5) 인도 절차

범죄인 인도의 요청은 공식적으로 외교경로로 전달되며, 통상 인도청구서, 체포영장, 대상자 신원확인 자료 범죄 사실에 관한 자료 등이 첨부됩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강제적 인도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울고등법원이 관할 법원입니다. 필요한 경우 검사는 인도 구속영장에 의거 대상자를 구속할 수 있습니다. 법원의 인도허가 결정은 단심으로 진행됩니다. 아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볼 수 있듯이 범죄인 인도 자체가 형사처벌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고등법원의 인도 결정에 대한 불복절차가 인정되지 않아도 적법절차 위반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단 인도허가 결정이 내려져도 대한민국의 이익 보호를 위하여 인도가 특히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무부 장관은 불인도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3. 자국민의 인도 여부

적지 않은 국가의 국내법은 자국민의 인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체로 자국민의 해외 범죄를 직접 처벌합니다. 반면 영미법계 국가들 중 상당수는 자국민의 국외범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처벌하고, 대신 자국민의 범죄인 인도를 금하지 않습니다. 범인은 범죄에 관한 증거와 증인이 있는 현지에서 재판받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자국민 불인도 주장에는 자국민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법」이나 UN 모델조약을 포함하여 오늘날 적지 않은 범죄인 인도 조약은 인도대상이 자국민인 경우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범죄인 인도법 제9조 1호, UN 모델조약 제4호 3호). 다만 UN 모델조약 등은 자국민이라는 이유로 인도를 거절한 경우, 상대국의 요청이 있으면 기소를 위하여 그를 자국의 관헌에 회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4. 정치범 불인도의 원칙

초기 유럽에서의 범죄인 인도 제도는 정치범의 인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군주는 아무래도 외국으로 도주한 정치범을 인도받는 데 관심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범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범죄와 달리 비록 실정법을 위반하였을지라도 국민 중의 적어도 일부는 그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 헌법은 본국의 정치적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피난한 자를 보호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오랜 투쟁 끝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자유주의적 사조가 강하였던 벨기에는 1833년 범죄인 인도법을 제정하면서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정치범 불인도를 규정하였으며, 외국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에도 이러한 내용을 삽입했습니다. 이를 시발로 오늘날에는 모든 범죄인 인도 조약에 정치범 불인도 조항이 예외 없이 포함될 정도로 보편화되었습니다.

다만 국가원수나 그 가족의 생명·신체를 침해하는 행위는 정치범 불인도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보통 가해 조항(attendat clause)이라고 합니다. 사실 국가원수에 대한 살해범은 고도의 정치범일 수 있으므로 이는 법이론적 숙고의 결과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국가원수나 가족의 살해 기도범을 보호하려다가는 전쟁이 발생하여 무고한 자국민이 희생될 것을 우려한 외교정책적 고려에서 규정된 것입니다. 이 조항은 1854년 나폴레옹 3세 암살 미수범이 벨기에로 도주하여 벨기에가 정치범 불인도를 주장하자, 양국 간에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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