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1.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의 대두 배경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란 우려되는 국가나 비국가 행위자로부터 대량살상 무기(WMD)나 이의 운반체제, 관련 물자 등의 출입의 차단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 협력체제입니다. 이는 기존의 국제법 체제로는 특히 테러집단이나 이른바 불량국가에 의한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 부시 대통령의 2003년 5월 31일 폴란드 크라카우 제안에서 출발했습니다.
즉 NPT 등 기존의 대량살상 무기 감시체제는 조약 당사국에 대한 수출통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비당사국이나 테러집단과 같은 비국가 행위자를 통한 WMD의 확산이나 이용은 효과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수동적 비확산 노력을 넘어선 적극적 대처방안으로 제안된 것이 바로 PSI입니다.
특히 2002년 12월의 서산호 사건은 PSI 출범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 선적의 북한 선박 서산호는 예멘으로 판매된 북한산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싣고 공해상을 항해 중이었습니다. 국기도 게양하지 않았고 선박 명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를 스페인 군이 검문하여 일반 화물로 위장한 미사일을 발견하고 일단 억류하였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예멘은 자국이 이의 구입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판매행위를 특별히 규제할 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이틀 만에 이 선박은 풀려났습니다. 이후 WMD가 국제 테러집단에 판매되면 더욱 위험할 것으로 예상되어 이에 대한 적극적 규제책이 필요하다고 주장되었습니다.
2. PSI의 내용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은 새로운 국제규범으로 창안된 것은 아닙니다. 다자조약 체제나 국제기구도 아니며, 따라서 사무국이나 본부도 없습니다. 기존의 국제법과 참가국들의 국내법에 따른 각국의 자발적 협력을 1차적인 이행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여국들은 다음과 같은 차단 원칙을 승인하고 이행함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 참여국은 단독으로 또는 타국과의 협조 아래 WMD, 이의 운반체제 및 관련 물자의 이전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둘째, 참여국 간에는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차단작전을 위하여 적절한 자원과 노력을 투여하고, 참여국들의 차단 노력을 조정합니다. 셋째,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국내법제를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 이를 위한 국제법적 기반도 강화합니다. 넷째, 참여국의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WMD, 이의 운반체제 및 관련 물자의 차단을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는 1) WMD 관련 화물의 운송이나 운송지원의 금지 2) 혐의가 있는 자국 선박에 대한 승선 · 검색과 WMD 관련 화물의 압수 3) 혐의가 있는 자국 선박에 대하여 타국이 승선, 검색, 압수를 요청할 경우 이의 수락을 진지하게 고려 4) 자국의 내수, 영해, 접속수역 내의 혐의 선박에 대하여 정선, 검색, 압수 조치의 실시 5) 자국 영공을 지나는 혐의가 있는 항공기의 착륙을 요구하여 압수를 실시하거나, 혐의가 있는 항공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 6) 자국의 항구, 공항 또는 기타 시설이 WMD 관련 화물의 환적지로 이용되는 경우 검색 및 압수 실시 등을 포함합니다. 다만 이상의 이러한 차단 원칙이 조약은 아니므로 참여국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WMD 관련 물자를 수송하는 외국 선박이 영해나 접속수역을 단순히 통과만 할 때, 무행 통항을 하는 외국선박을 연안국이 과연 정선하고 검문할 국제법상의 권한이 있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2011년 10월 현재 중국을 제외한 4개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포함하여 모두 98개국이 PSI에 참여하고 있으나, 국가에 따라 참여의 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참여국들은 주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PSI의 내용을 발전시키며, 차단훈련도 합동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PSI는 기존의 국제법과 국내법을 기반으로 수행한다고 주장되지만, 결국은 기존의 국제법 체제로는 WMD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등장하였습니다. PSI가 새로운 국제규범은 아니므로 이는 참여국들의 국내법적 통제 강화에 더 의존하고 있습니다.
PSI의 국제법적 근거를 강화하기 위하여 활용되는 것은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입니다. 제1540호 결의(2004.4.28)는 비국가 행위자의 WMD의 생산, 운반, 이전, 사용 등에 지원을 금지하고 있어서 일웅 PSI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근거로 제시됩니다. 다만 반드시 공해상의 혐의 선박을 제3 국이 강제적으로 차단시킬 수 있음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 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718호(2006. 10. 4)는 북한의 WMD 관련 물질이나 장비 등의 공급, 판매, 이전 등을 금지하고, UN 회원국들은 관련 북한 화물의 검색에 협력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가 북한의 금수품을 선적하고 있는 공해상의 선박에 대하여 누구나 임검 수색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결의 제1874호(2009. 6. 12)도 북한의 금수품을 수송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공해상의 선박에 대하여는 기국의 동의하에 검색을 실시할 수 있으며, 만약 기국이 공해상에서의 검색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기국은 문제의 선박을 검색에 적합한 항구로 가도록 지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미국은 공해상에서 혐의 선박을 실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대표적인 편의치적국인 라이베리아, 파나마 등 현재 11개국과 PSI 목적의 양자 간 승선 협정(Ship Boarding Agreement)을 별도로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들 협정은 공해상에서 협정 당사국의 WMD 관련의 혐의 선박을 발견하여 기국에게 승선, 검색, 압수 또는 선박 억류 등을 요청하여 대개 2~4 시간 내로 선적국이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강제조치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미국은 세계 해운물동량의 약 2/3에 대하여 PSI 목적의 검문검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한국의 참여
PSI가 출범하던 초기 한국 정부는 이에 참여가 대북관계의 경색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여 소극적 자세를 취했습니다.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관련 동향의 청취나 역외 훈련에 대한 참관인 파견 등 제한적 협조만 하기로 하고 공식 참여는 거부했습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 제1718호를 채택한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는 확산 방지구상(PSI)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며, 우리의 판단에 따라 참여 범위를 조절할 것이며,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의 활동은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남북 해운합의서 등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해운합의서는 남북한 간 해상운송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체결된 것으로서 한국 정부가 주장한 바와는 달리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PSI와는 그 취지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남북 해운합의서를 통하여는 상선만이 적용대상으로 되고, 한국 관할수역 내에서만 북한 선박의 검색이 가능하며, 북한 선박의 위반 적발 시에도 주의 환기와 관할수역 밖으로 퇴거를 요구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한 PSI가 반드시 북한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점에서도 남북 해운합의서를 통하여 PSI의 취지는 달성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 성공을 발표하자 비로소 PSI 원칙을 승인하겠다고 발표하여 전면 참여를 선언하였습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한국은 2010년 10월 부산 인근에서 PSI 해상차단 훈련을 주관하였으며, 11월에는 핵심기구인 운영 전문가 그룹(OEG)의 위원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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