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의 국제법 준수 이유
1. 강제력이 낮은 국제법
국제법은 법으로서의 강제성과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내법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국제법이 과연 법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국제법은 여론에 의하여 설정된 도덕기준 또는 관행적인 행동 규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현실적 강제력이 미약한 국제법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준수되고 있을까요?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이 잘 준수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각국의 국제법 준수 이유
첫째, 국제법은 국제사회의 공통의 이익을 보장하여 주기 때문에 준수됩니다. 예를 들어 각국은 지구환경 보호라는 공통의 이해를 갖습니다. 이는 몇몇 국가의 공해방지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없으며, 전 세계 모든 국가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국제환경법은 각국이 얼마씩 양보를 하여 지구 환경의 보호라는 공통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즉 국제법은 국가 간의 원활한 국제협력이 필요한 경우 이를 실현시켜 주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이러한 국제법의 준수는 각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므로, 국가는 국제법의 준수에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째, 국제법은 각국의 합의와 관행을 바탕으로 성립하였기 때문에 잘 준수되고 있습니다. 통일적 입법기구가 없다는 사실이 국제법의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국제법의 준수를 확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국제법의 주요 법원인 조약은 당사국의 동의를 통하여 정립됩니다. 즉 국가는 자신이 원하는 법에만 동의하여 자신이 원하는 국제법을 정립시킬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조약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각국은 자신이 원하는 법을 만드는 셈이므로 국가는 그 법을 준수하게 됩니다.
국제법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관습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습법은 그 자체가 각국의 실행을 바탕으로 발달합니다. 따라서 각국은 종전부터의 자신의 관행에 입각한 관습법을 잘 준수하리라고 예상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국가는 기존의 조약이나 관습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당장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법에 배치되는 행위를 하는 국가는 훗날 상대방이나 제3 국에 의하여 동일한 법 위반 행위가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위법하게 타국의 선박을 나포한 국가는 상대국에 의하여 자국 선박도 위법하게 나포될 수 있음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결국 국가는 목전의 이익만을 위하여 기존의 국제법으로부터 이탈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으며, 당장은 불이익을 초래하는 국제법도 준수하게 됩니다.
셋째,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는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각국은 되도록 국제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날 국가는 고립되어 살기 힘들며, 거의 모든 방면에서 상호의존적입니다. 각국은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국제교역을 필요로 하며, 자국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도 국제교류가 긴요합니다. 타국과의 빈번한 국제교류를 통하여 이득을 얻기 원하는 국가일수록 국제사회에서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상대, 즉 국제법을 잘 준수하는 국가라는 명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빈번한 범법 국가라는 악명은 곧 해당 국가에 대한 여러 가지 현실적 불이익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국제사회에서 각종 금융제재를 받는 것이 한 예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약소국만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획득은 강대국의 외교에서도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강대국 역시 국제법 위반을 피하게 되며, 자국의 행위가 국제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주장을 게을리하지 않게 됩니다.
넷째, 상호주의가 국제법의 준수를 확보시켜 줍니다. 오늘날의 국제관계는 무수한 상호주의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는 외교사절을 서로 교환합니다. 자국 내 특정 국가 외교사절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곧바로 상대국에 체류하는 자국 외교관의 지위가 위태롭게 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상대국의 위법행위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유책 국에 대한 국제의무의 이행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특정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면 즉시 동일한 보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고립된 생활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자국의 위법행위는 바로 동일한 불이익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국의 위법행위는 경우에 따라서 직접적인 피해국이 아니더라도 국제법 질서를 유지하기 원하는 다수의 국가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중앙집권적 공권력이 확립되지 않은 국제사회에서 상호주의는 국제법의 준수를 확보하는 기본 바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3.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로서의 국제법
국내법의 집행방식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막연히 강대국은 항상 국제법을 무시하리라는 오해를 품고 있습니다. 국제법은 국내법에 비하여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닌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제법은 현대사회에서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준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세기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강대국이 일방적 무력행사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줄었을까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제2차 대전 후 지난 65년 이상 특정 국가가 타국에 의하여 무력으로 병합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국가 간 조약 체결의 건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관습 국제법의 법전화 작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국가행동에 있어서 합법성의 개념은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법은 통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common Language in intermational relation)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할 것이다. 국제법이 잘 지켜지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왜 그렇게 분쟁이 많을까요? 그런데 많은 국제분쟁은 단순한 비우호적 행위나 국제 예양의 위반으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또한 국제법 자체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의 적용대상이 되는 '사실'이 불명확하여 발생하기도 합니다. 국제법의 내용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거나 명확하지 않아서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국제사회의 분쟁은 반드시 어느 국가가 국제법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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