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법적 성격
1. 국제법의 법적 성격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이 잘 준수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일반인에게 던지면 어떻게 응답할까요? 아마 상당수는 국제법이 과연 법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국제법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법이냐는 논란은 근대 국제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이란 입법기관에 의하여 정립되고, 행정기관에 의하여 집행되고, 위반자에 대하여는 사법기관에 의한 제재가 가하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내법 질서에서는 법을 위반하면 국가권력에 의한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하여 아직 국제사회에는 범세계적인 강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 집행기관이나 재판기관이 없습니다. 이에 국제법 위반국에 대하여 즉각적인 제재가 가하여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강대국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경우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즉각적인 대책이 마땅치 않습니다. 따라서 국제법은 진정한 의미의 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국제법이란 한낱 이상주의자들의 마음에 담겨 있는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 국제법의 실효성과 강제성
분명 국제법은 법으로서의 실효성이나 강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국내법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 힘과 목전의 국익에 중점을 두는 현실주의자들은 매우 쉽게 국제법의 존재를 무시할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은 국제법이 권력 정치에 의하여 언제든지 휴지로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법이란 주권자의 명령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도 국제법은 법이라기보다는 여론에 의하여 설정된 도덕기준이거나 관행적인 행위 규칙 정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국제법이 과연 법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앞서 과연 법이란 무엇일까요? 국내법 수준의 강제성과 실효성을 가져야만 법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간에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국제법의 법적 성질을 부인하는 입장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제법의 법적 성격을 지지하는 근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 국제법의 법적 성격을 지지하는 근거
첫째, 국제법의 법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정의 실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같은 사태가 위법한 행위가 아니고, 단지 도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일까요? 강대국이 자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특정국의 해안을 무력으로 봉쇄하여도 이를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 과연 국제사회의 정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일까요? 우리가 이러한 행위를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으려면 ‘국제법’이란 판단기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둘째, 국제법은 위반이 많다거나 위반자에 대한 제재수단이 미약하다는 결함이 있다고 하여 과연 국제법의 법적 성격이 부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국제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상대방이 국제법을 위반하였다고 비난합니다. 매일같이 그러한 보도에 접하게 되면 일반인들은 국제법이란 '법'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공허한 도덕률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 하여 보면 국내법 질서에서도 무수한 법 위반행위가 매일 같이 반복되고 있으며, 범법자에 대한 완벽한 제재 또한 실현되고 있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의 법적 성격을 의심하는 자는 없습니다. 반면 국제법 질서에서도 상대적으로 미약하나마 위반자에 대한 제재가 실시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위반이 많다거나 위반자에 대한 제재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는 것은 정도의 문제에 불과하지, 국제법과 국내법의 법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 취급할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셋째, 현실의 국제사회에서 각국은 국제법상의 문제들을 '법률'의 문제로 취급하여 왔지, 단순한 도덕이나 예의 상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국의 외교공관이 피습되면 피해국은 이를 법률문제로 대처합니다. 이 사건의 책임이 있는 국가도 이를 국제법의 테두리에서 처리하거나 변명하지, 국제 예양의 문제로만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항상 독도가 국제법상으로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적지 않은 국제분쟁이 당사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에서 법률문제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는 각국이 국제사회의 행위규칙으로서 국제법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증거입니다.
넷째,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이 국제법을 '법'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헌법 제6조 1항도 국제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국제법의 법적 성격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그 나라로서는 국제법의 법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는데,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의 헌법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하여 볼 때 국제법이 위반이 많다거나 충분한 제재가 확보되지 못하는 점을 이유로 이의 법적 성격을 부인하려는 태도는 사회학적 설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법 논리로서는 성립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즉 국제법이 제도적으로 더욱 정비되어야 하고 현실적 규범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의 법적 성격 자체가 부인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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