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
1. 국제법과 국내법 관계의 의의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요? 국제법은 국제사회의 법으로서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고, 국내법은 한 국가 내에서 개인 간의 관계 또는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라고 구분하면 양자는 서로 관계가 없는 별개의 법체계로 인식하여도 무리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그러한 구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국제법과 국내법이 동일한 대상을 규율하는 경우가 많고, 이때 양자의 내용이 상호 모순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오늘날 영해의 폭은 12해리 이내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관습 국제법화 되어 있습니다. 어느 국가가 300해리 영해법을 제정하고, 이를 위반한 외국 어선을 나포하여 을 국내 재판에 회부한다면 담당 판사는 어떠한 판결을 내려야 할까요?
양자 간의 충돌은 국제법과 국내법이 서로 다른 내용을 규정하여 발생하는 적극적 충돌이 있는가 하면, 국제법상 요구되는 내용을 국가가 국내법으로 제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소극적 충돌의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 국내법의 전용물로만 여겨지던 대상에 대하여 국제적 규제가 설정되는 예가 확대되고 있으며, 국제법적 사항에 관한 국내법이 제정되는 예도 늘고 있어서 양자 간의 충돌 가능성 역시 높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절대군주가 국내 입법권과 외교권을 모두 장악하던 19세기 이전의 시대에 비하여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외교권과 국내 입법권이 분리된 오늘날에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충돌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법과 국내법이 상호 어떠한 관계인 가는 특히 국제법 학계에서의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검토는 이상과 같이 양자의 내용이 모순되는 경우에 부딪쳤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연구입니다. 즉 양자가 저촉되는 경우 국내의 행정부나 법원은 어느 편을 우선하여 적용할 것인지, 국제재판소에서는 어느 편을 우선시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 결과 국내에서의 처리 결과와 국제사회에서의 처리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달라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체계적 관계에 관한 법철학적 문제임과 동시에 각국의 국내법과 실행은 물론 국제재판소에서의 실행에 관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실제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2. 국제법과 국내법 관계의 3가지 입장
양자관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전통적으로 일원론(monism)과 이원론(cdualism)으로 크게 대비되어 왔습니다. 그중 일원론에는 국내법 우위의 일원론과 국제법 우위의 일원론이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이론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실제로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에 대하여는 전통적으로 3가지 입장이 전개된 바 있다고 이해함이 적절합니다.
3. 국내법 우위론
국내법 우위론은 국내법이 항상 국제법보다 우월한 효력을 지니며, 양자가 상호 모순되는 경우 국내법이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국제법이란 국내법에 의존하여 존재하며, 국제법이란 국내법의 대외관계법 정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조약은 각국의 국내법에 따라 권한이 부여된 국가 기관 간의 의사의 합치를 통하여 성립하므로 국제법의 궁극적 타당 근거는 국내법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19세기까지의 지배적 이론이었습니다.
국내법 우위론은 복수 국가의 의사의 합치를 통하여 성립되는 국제법을 개별 국가의 의사로서 제정되는 국내법에 종속시킴으로써 결국 국제법의 독자적 의의를 부인하게 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제사회에는 국가의 수만큼의 다양한 국제법이 있게 되니 각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이란 성립할 수 없고, 결국 이는 국제법 부인론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이론은 개별 국내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국제법이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즉 개별 국가의 헌법질서가 쿠데타에 의하여 폭력적으로 전복된 경우에도 그 국가가 체결한 기존의 조약이나 관습 국제법은 변경되지 않으며, 계속 그 국가를 구속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입니다.
4. 이원론, 상호 독립적인 국제법과 국내법
이원론은 국제법과 국내법을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별개의 법체계로 이해하는 이론입니다. 이 입장은 국내법이란 국가의 단독 의사로서 정립되고, 개인 상호 간의 관계나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며, 개인은 반드시 이에 복종하여야 하는 규범력이 강한 법으로 이해합니다. 반면 국제법은 여러 국가의 공동 의사에 의하여 정립되며,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며, 평등한 주권국가 사이의 법이므로 규범력이 약한 법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렇듯 양자는 서로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른 별개의 법질서이므로 서로 상대의 영역에 간섭할 일이 없고, 충돌이나 상호 우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국내 재판소는 오직 국내법만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리면 되고, 국제법이 국내적으로 적용되기 위하여는 반드시 국내법으로의 변형(transformation)을 거쳐 국내법의 자격으로만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원론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고 있으며, 정치적 색채가 적어 20세기 초반 이래 상당기간 국제사회에서 다수설로 수락되어 왔습니다. 이는 국제법 위반의 국내법을 무효로 선언하기보다는 국가책임의 추궁에 그치고 있는 국제판례의 입장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 역시 오늘날의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즉 국제관계의 발전에 따라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하여도 국제법이 직접 적용되는 예가 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국내법과 국제법이 충돌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원론의 입장에서는 국제법 위반의 국내법을 적용하면 해당 국가는 국제법상의 국가책임을 지게 되는 현상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한국 헌법을 포함하여 많은 국가의 헌법이 조약이나 관습 국제법의 국내 직접 적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국가의 재판소는 국제법을 국내법으로의 변형 없이 직접 적용하는 현실과도 괴리가 있습니다.
5. 국제법 우위론
국제법 우위론은 국제법이 국내법의 타당 근거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근래 인권조약 등 개인의 권리를 국제법이 직접 규정하는 예가 늘고 있는 현상을 보아도 국제법과 국내법은 중첩되는 예가 많고, 양자가 저촉되는 경우 각국은 국내법을 이유로 국제법상의 의무를 면할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국제법이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각국이 자국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국가 관할권 행사의 한계에 관한 국제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보아도 국내법의 궁극적 근거는 국제법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국내법의 근거가 국제법에 있다는 주장은 법 발전의 역사적 현실을 무시한 것이며, 오늘날 각국의 법적 확신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실세계에서 국제법에 위반되는 국내법이 자동적으로 무효로 되는 체제는 성립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주장이 실제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법 우위론은 규범의 세계에서는 타당할 수 있으나, 국제사회의 현 단계에서는 아직 실현이 요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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